전라도경상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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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총장 조회 3회 작성일 2021-01-20 19:05: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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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여행의 모든 꿀팁 다 모았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백제로 떠나는 충청도 여행,
남도소리에 어깨가 들썩일 전라도 여행,
산사와 서원을 등대삼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로 떠나는 여행~

한국의 참멋과 참맛을 만날 수 있는 여행 꿀팁을 한데 모았어요.

공주와 부여, 익산으로 떠나는 문화유산 여행 '백제 고도의 길'
전라도의 흥과 멋, 그리고 맛의 매력에 빠지는 '소릿길'
한국의 서원과 산사를 따라 진자 한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서원의 길'과 '수행의 길'

참 만남, 참 문화유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자연과 문화유산으로 힐링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핵심만 모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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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cha.go.kr/visit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공식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hfkorea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공식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visit.korean.heritage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visitkoreanheritage

[VLOG] Ep 23.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여름 여행/Summer Trip

설명

지역감정이 생긴 진짜 이유(15분순삭 ver) #효기심6

#지역감정 #경상도 #전라도 #효기심

경상도 전라도 지역감정이 생긴 진짜 이유(16분이 순삭?ver)

경상도 전라도 지역감정이 생긴 진짜 이유.
아마 지금 쯤 어마무시한 것을 효기심이 건드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역감정이 없는 충북 청주출신이고,
저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저의 아버지. 저까지 4대째 청주 토박이죠.
게다가, 효기심의 외가집도 안양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앞서 주변의 우려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짜잘짜잘한건 다 재끼고
이미 큰틀에서는 연구들도 수 없이 많이 있어온 정설 중의 정설의 펙트들.
저는 오늘 이 내용이 절대 어마무시하지도 않은 것이고,
오히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고, 더 이상 반복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만들게되었습니다.
이런 뉴스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과거 80년대만해도,
경상도 택시가 전라도에 가면 경상도 택시가 왜 전라도에 왔냐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못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었고,
경상도에서는, 전라도의 공업단지에서 생산된 빵이나 과자를 사먹지 말자는 불매운동도 보도된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현재 기아 타이거즈가 광주와 전남 연고 팀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었음
지금 현재도 꽤 많은 분들이 지역감정을 완벽하게 없애진 못하고 계시죠.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지역감정이 생겼는지..
역사적인 과정.
넘나 통수맞은 느낌을 받으실 정도로 펙트로 후려드리겠습니다.
1. 경상도만 발전시켜서 그렇다?
가끔 이런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과거 삼국시대부터! 백제, 신라로 갈라져있어서!
그때부터 지역감정이 있던거야!
우선 지도를 한번 보겠습니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1945년 해방직후까지만해도,
영남은 산이 많고, 호남은 평야은 저렇게 평야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호남은 과거부터 농사도 잘되고 풍족했지만,
영남은 바닷가지역은 물고기라도 잡아서 살아갔고,
그외에는 산간지역에서 간신히 벌어먹고 살고 있었죠.
그렇게 농경사회일 때에는 호남이 영남보다 잘 살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양반이 등장합니다.
대한민국 제 5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 대통령을 무려 5번이나 한분이죠.
이분에 대해서는 다들 대충 아실겁니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죠.
그런데,
이분을 아시나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 미국과 외국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미국과 함께 처음 만든 분입니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이분이 청와대에 들어오시면서
윤보선대통령+장면내각에서 계획했던 이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하게됩니다.
타이밍도 넘나 좋게도 당시 미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한 자유진영 국가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북한이나 북베트남과 같은 공산국가들의 세력이 커지는걸 넘나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국가가 많아지거나 커지는 것은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당시의 소련에게 개이득인 부분이었기 때문이죠.
도미노이론. : 예를들어 한반도가 공산주의국가가되면, 주변에 있는 나라들도 서서히 공산국가로 도미노처럼 우루루루 변할 것이라는 우려.
그것때문에 베트남전쟁도 주작으로 일으켜서 개입했고,
남한에도 어마무시한 돈을 지원하게됩니다.
당시 돈으로 35억 달러.
현재가치로 환산하기도 힘든 어마무시한 돈을 박정희 정부에 지원합니다.
그 지원을 받으면서
여러가지 경제개발 5개년 정책을 펼쳤죠.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지역감정입니다.
박정희라는 사람이 최초로 대통령이 된 제 5대 대통령선거
윤보선후보와 박정희 후보. 이 지도를 보면 1963년까지만해도 특정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지역감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수도권과 영남에 편중되어 국가개발이 시작됩니다.
물론 부산은 일제강점기때부터 일본이나 태평양을 기반으로한 큰 항구로서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부산을 중심으로 영남과 수도권에 투자하는게 경제발전에 더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절대적인 정보로는 경상도가 전라도에 비해, 공업단지나, 기업., 여러 도로 철도든 거의 모든 면에서 우선적으로 개발되었죠.
그래서 전라도가 지역감정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나,
영남과 수도권중심의 국가개발이 있었어도, 강원도와 충청도는 입다물고 있었습니다. 즉, 국가개발사업 때문에도, 그다지 지역감정은 생기지 않고 있었던거죠.
그럼 지역감정이 도대체 왜 생긴걸까?!
2. 박정희 vs 김대중
1971년 4월. 대한민국 제 7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됩니다!
6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박정희대통령은 윤보선후보를 10% 차이로 격차를 벌리고 이겼는데,
영남은 고향이니까 그렇다고쳐도,
경남 : 68.6% 23%
경북 : 64% 26.4%
전라도의 경우
전남 : 44.6% 46.6%
전북 : 42.3% 48.7%
이때까지만해도 특별한 편중된 결과는 없었습니다.
중요한건 이 7대 대통령선거인데,
어마무시한 정치거물들의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됐습니다.
결과는 물론 박정희 53.2%, 김대중 45.2%.로 박정희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이당시 재밌는 사실이 있었는데,
현재 인구분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은, 5000만 인구중 절반 2500만이 사는 경기인천서울 수도권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했죠.
1970년대 대한민국의 인구는 지금보다 2000만명 적은, 3000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구의 절반인 1500만명이 영남과 호남에 살고 있었죠.
지금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혈안인 반면,
당시에는 표를 받아야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영남과 호남도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이때부터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ㅓ.
김대중 曰 : 경상도 독재정권을 타도하자!
박정희 曰 : 빨갱이들에게 정권을 내줄 순 없다!!!!!!
호남을 대표하는 후보! 영남을 대표하는 후보!이렇게 지지자들끼리 갈리기 시작했죠.
그렇게 전라도는 독재를 타도하는 세력 하지만, 간첩이나 빨갱이.
경상도는 경제개발의 주역 , 그리고 독재의 앞잡이로 나뉘는 형국이 된것이죠.
게다가,
당시 박정희정권의 중앙정보부는, 호남에서 경상도를 싫어한다며 대통령선거 3일전에 찌라시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선거에 정부기관이 여론에 개입한 어마무시한 사건이었죠.
아무튼,
이렇게 제 7대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정치인들의 선거전략과, 과거 독재정권의 정부기관의 선거개입까지, 이런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호남과 영남의 지역감정이 차츰차츰 시작됩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어제오늘얘기가 아닙니다.
홍준표 : 부산경남이 문재인 지지하고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 되겠는가?
박지원, 안철수 : 문재인정권이 호남을 홀대하고 있다.
지금도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죠.
게다가,
2. 노태우 당선
1987년 12월16일.
전국 투표율 89.2%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씨가 당선됩니다.
전직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사람은 공식적인 명칭은 전 , 대통령이아니라 씨입니다.
아무튼 전두환의 친구였던 이 노태우씨가 어부지리로 당선됩니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시작으로 체육관안에서 지들 꼬봉들만 쳐박아서 당선되고, 다른 대통령들은 집에서 못나오게, 선거출마제한을 걸어놓고
전두환이 당선될 수 밖에 없게 만든 그 선거판에서,
이제 국민들이 직접 뽑는 정말 수 있는 대통령직선제선거에서도, 전두환의 친구가 또 당선되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민주화의 열망에 가득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두환의 친구가 또 당선되는 것이 가능했던걸까?
3. 3당합당
아까도 말했다시피 노태우 대통령은 머리가 아팠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국회에서 과반이 안되었으니말이죠.
이 때.
머가리를 오지게 잘굴렸습니다.
hey DJㅎ 나랑 손잡자능
노태우당의 125석. 김대중당의 70석을 합쳐서 195석.
이렇게 두당이 합치자고 빅딜을 걸죠.
그러나,
김대중 : 응 시러 국민들이 니 막으라고 우리를 뽑았는데 합당을하라고? 사라져.
하면서 거절을 하죠.
그런데 노태우대통령은 머리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김영삼후보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길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바로 그점을 이용합니다..
1990년 1월.. 3당합당이 일어납니다.
YS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YS와 JP 이 세당이 당을 합한거죠.
그리고 민주자유당을 만듭니다. 민주자유당 218석
? 그런데 219석이 아니라 218석이 되었죠.
당시 노무현 의원은. 3당합당이 국민이 원하는게 아니라며 민주당을 만듭니다.

호남을 고립시키면서 합해진 정당 민주자유당. 이것이 후에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의 평화민주당이 민주당이 되고, 새천년민주당이 되고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을 거치면서 그리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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